한글의 아픈 과거사

해례본 이야기 1

연산군은 세종대왕의 증손자였습니다. 조선의 왕이 된 후, 그는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에 자신의 할머니와 많은 대신들이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그들을 모두 처형하고, 조선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폭압적인 통치자로 악명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그는 폭정으로 통치하며 대신들을 처형하고 궁녀들과 음란한 놀이에 빠지는 등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습니다. 충직한 신하가 이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연산군에게 항의했습니다. 분노한 연산군은 그 신하의 옆구리에 화살을 쏘고 칼로 팔과 다리를 잘랐습니다. 분이 가시지 않자, 그는 그 신하의 양아들과 친척들도 죽이고, 그 신하의 집은 허물어 연못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연산군이 무자비하게 신하들을 죽이고 정욕에 빠져 국정을 소홀히 한 것을 생생하게 비판하는 편지를 받게 됩니다. 작성자는 알 수 없었지만, 그 편지는 한글로 쓰여진 것이었습니다. 익명의 한글 편지에 격분한 연산군은 한글을 사용하는 자는 참수하고, 한글로 쓰인 책은 모두 불태우라고 신하들에게 명령했습니다.

이 시기에 한글로 쓰인 많은 책들이 불에 타 소실되었습니다. 1504년 이 사건 이후, 훈민정음 해례본은 약 430년 동안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이 책이 다시 나타나기 전까지 한글 창제의 원리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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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례본 이야기 2

한글과 관련된 두 번째 아픈 역사적 사건은 일제 강점기의 한글 탄압입니다.

연산군 때 사라진 해례본은 1940년 마침내 발견되었습니다. 이 해례본을 전형필 선생이 구입하게 되는데, 이 책이 발견된 시기가 1940년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한글과 관련된 우리나라 근대사를 살펴보면, 한글은 1894년에 국어로 제정되었습니다. 이때 한글이 국가의 공식 언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1910년 한국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일제강점기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911년 일제가 한국어를 말살할 것을 우려한 국어학자 주시경은 한글 사전 편찬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훈민정음에 ‘한글’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3년 동안 사전 편찬에 몰두했지만, 1914년 사전을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사라질 위기에 처한 한글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사전 편찬 작업을 재개했습니다. 1929년 주시경 선생의 뜻을 이어 조선어학회 회원 108명이 모여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를 조직했습니다. 사전 편찬을 위해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자음과 모음의 순서를 정한 가장 큰 이유는 사전에 수록할 단어의 순서를 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해례본은 없었습니다.

이후 한글의 역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1938년 일본의 식민 통치로 인해 학교에서 한글 사용이 금지되었습니다.
1940년 한국인들은 한글 이름이 금지되고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도록 강요당했습니다.
1941년에는 대한민국의 국어가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로 변경되었습니다.
1942년 일제는 조선어학회를 민족 독립 운동 단체로 규정하고 당시 치안 유지법에 따라 가장 중한 혐의를 적용해 전국적으로 회원들을 긴급 체포했습니다. 당시 체포된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대부분 6개월이 지나기도 전에 고문으로 사망했습니다.
1943년, 일제 식민지 정부는 제2외국어로 가르치던 한국어 수업을 완전히 없앴습니다.

해례본이 발견된 1940년대에는 한국인 이름을 강제로 일본 이름으로 바꾸고, 국어도 일본어를 사용했습니다. 한글은 영원히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해례본은 발견되었지만, 세상에 공개되지 못했습니다.

이후 해례본이 공개되었을 때는, 한글 창제의 원리를 알지 못한 채 자음과 모음의 순서가 정해졌으며, 한글 교육 방법도 해례본의 내용과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해례본 이야기 3

1945년 해방 이후, 일제 식민 통치를 견뎌온 한글은 아픈 과거를 이겨내고 살아남았습니다.

살아남은 한글은 해례본을 통해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습니다. 해례본은 1962년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고,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하지만 해례본이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이미 한글 교육 방식이 해례본과는 상당히 달라진 상태였습니다.

1950년대에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사회경제적 문제와 생존의 문제가 시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해례본에 맞춰 한글 사전을 개정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현재 한국인이 한글을 배우는 순서에는 한글 창제의 원리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한글은 계속 사용되고 있지만 한글 창제의 원리는 퇴색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대다수의 한국인은 해례본에 기록된 한글 창제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해례본(한글 해설서)에 제시된 방법으로 한글을 배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징어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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